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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에세이/셋이 되면 달라지는 것들

3화. 일방적인 축하와 걱정을 받게 된다

by 명선 2021. 9. 3.

3화. (내 감정에 대한 질문보단) 일방적인 축하와 걱정을 받게 된다

    쭌이 다음으로 가장 먼저 임신 소식을 알린 사람은 엄마였다.

    엄마, 나 임신했어.”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엄마는 호탕하게 웃었고, 나도 따라 호탕하게 웃었다. 엄마는 웃으면서 내게 잘했다고, 축하한다고 말했다. 사실 엄마에게 전화를 걸기 전에 조금은 혼날 각오를 했었다. 아직 결혼식도 올리기 전인데 임신부터 하면 어떻게 하냐고 말이다. 그런데 엄마는 혼내기는커녕 너무 좋아했다. 엄마를 시작으로 다른 가족들에게도 전화를 했고, 다른 가족들도 쭌이네 가족들도 우리의 임신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며 축하해줬다. 너무 자연스럽다 못해 심드렁하기 까지 한 반응들이 이어졌다.

    아니, 나 임신했다니까? 안 놀라?”

    딱히. 사실 오래 버텼다 생각했는데.”

    평소에 자기보다 일찍 결혼하면 안 된다며 으름장을 놓던 언니의 대답이었다. 동거를 한지 몇 개월이 지났는데도 조용해서 오히려 이상하게 생각했단다. 엄마랑 아빠도, 오빠랑 새언니도 속도위반을 해서 일까? 언니는 나와 쭌의 속도위반에도 굉장히 관대했다.

    친구와 지인들에게 알릴 때도 그들의 반응은 나를 당황스럽게 했다. 왜인지 모르겠는데 내가 할 말이 있다고 하면 다들 임신을 했냐고 물었다. 다들 신기가 있는 건지. 살짝 소름이 돋았다. 아무리 쭌이와 내가 결혼을 전제로 한 동거를 하고 있다하더라도 어째서 결혼을 건너뛰고 임신을 언급 할 수가 있지? 왜 그랬냐고 물어도 상대방도 그 이유를 알지 못했다.

    또 황당했던 하나는 다들 놀라기보다는 자연스럽게 축하를 해주었다는 사실이다. 내가 임신을 했다는 이 사실이 나만 당황스럽고 나만 놀라운 것인지 헷갈렸다. 사실 다른 사람들은 이미 모든 사실을 알고 있었고, 뒤늦게 나에게 몰래카메라였음을 알려주면서 많이 놀랐지?’ 하고 얘기해주는 듯한 느낌이었다. 왜 나한테만 비밀로 했던 거야? 살짝 배신감이 들었다.

    물론 내 임신 사실을 듣고 걱정을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지금까지 내가 어떻게 활동을 해왔고, 얼마나 꿈에 대한 열정을 불태우는지, 일에 대한 욕심이 대단한지를 알고 있기에 아기가 생긴 것을 축하하기 보다는 앞으로 내가 아무것도 못하고 주저앉게 될까봐 안타깝다고 했다. 실제로 지역을 옮긴 후 프리랜서로서 슬슬 자리를 잡아가던 터에 하게 된 임신이라 나도 걱정이 되기는 했다. 아직 영화인으로서, 프리랜서로서 입지를 탄탄히 해 놓지도 못했고, 겨우 밥벌이를 하는 수준인데다가 쭌이도 나도 모아둔 돈도 없어서 아기를 키우기에는 부족한 환경이라고 생각했다. 그렇다고 내가 지금 급하게 취직을 시도한다 해도 임신한 사람을 뽑아줄 곳이 있을 리 만무했다. 그래서 쭌이는 어깨가 더 무거워졌을 거다. 책임감이 강한 사람이고, 힘들어도 잘 내색하지 않는 사람이라 내가 항상 혼자 짊어지지 말라고, 힘들면 내가 책임 질 테니 나한테 기대라고 이야기했는데, 그런 사람이 농담처럼 지나가는 말로 이제 승질난다고 때려 칠 수 없게 됐네.”라고 얘기 했다. 그 말을 듣는데 안쓰럽고 미안했다.

    주위에 임신 사실을 알리면서 엄마로서 축하한다.’어떻게 할래?’의 두 가지 말만 들으면서 내 마음을 궁금해주는 사람이 없음을 서운해 했는데, 쭌이도 자신의 마음을 미처 헤아릴 시간 없이 그렇게 아빠의 마음을 가지게 되어버린 것이다. 이렇게 자연스럽게 나와 너라는 사람이 엄마와 아빠가 되어버리는 거구나. 앞으로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변해가는 것들이 자꾸자꾸 생겨나겠지만, 그래도 우리는 서로를 잊지 않길, 잃어버리지 않길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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