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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에세이/셋이 되면 달라지는 것들

5화. 임산부는 약자라는 고정관념에 사로잡히기도 한다

by 명선 2021. 9. 9.

5화. 임산부는 약자라는 고정관념에 사로잡히기도 한다

    장애인을 대하는 에티켓 중에는 그의 요구가 있을 때 돕도록 하라.’는 것이 있다. 상대방이 도움이 필요하다고 자신이 독단적으로 판단하여 일방적으로 행동하는 것은 친절이 아닌 참견이며, 과잉친절이나 과잉보호는 오히려 상대를 불편하게 할 수도 있다는 의미에서다.

    임신을 한 사실을 주변에 알린 후부터 이 에티켓의 내용이 계속 머릿속에 떠올랐다. 주변에서는 나를 배려하기 위해 많은 친절을 베풀어주셨고, 나도 고마운 감정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이 정도 까지는 안 해주셔도 괜찮은데.’라는 마음이 사라지지는 않았다. 충분히 할 수 있다고 생각해서 시작한 일들이었는데, 배려라는 이름아래 배제되고 있는 것은 아닌가 라는 걱정도 들었고, 집에서는 수저를 놓고 반찬 그릇을 옮기는 일상적인 움직임마저 하지 못하게 하니 내가 정말 약한 사람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임신사실을 알게 된 후, 한 달 정도는 나 스스로도 약한 사람프레임을 씌우고 있기도 했다. 초기에는 몸살감기처럼 컨디션이 안 좋기도 했고, 전혀 무리하지 않았는데도 배가 당기는 일도 있어서 조금 겁이 났기 때문이다. 게다가 요즘에는 아기가 거품처럼 사라지는 유산도 종종 일어난다더라.’는 식의 무서운 이야기를 들으니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몸을 쓰는 일에 소극적이게 되고, 운전도 그만두었다.

    그렇게 나를 제한하다보니 한편으로는 화도 났다. 임신을 했을 뿐인데 할 수 있는 게 이렇게나 줄어든다니, 계산이 맞지 않았다. 게다가 임신육아 선배들이 입을 모아 뱃속에 있을 때가 제일 편하다.’, ‘아기가 세상 밖으로 나오는 순간, 정말 아무것도 하지 못하게 된다.’고 이야기를 하니, 임신기간 중에 최대한 많이 움직여 하나라도 이뤄놓자는 생각도 들었다. 그래도 이전과 똑같이 하지는 못하기에 촬영현장에 나가야 하는 일들은 정중히 거절했고, 할 수 있는 일들을 받아서 아기와 타협하며 공존의 길을 찾기 시작했다. 온라인으로 할 수 있거나 무거운 짐을 드는 등 과격한 움직임이 필요하지 않은 일들 위주로 스케줄을 다시 짰고, 일을 하기 전에는 항상 아기에게 오늘 엄마가 이런 일을 하는데, 탄탄이가 조금 불편할지도 몰라. 그래도 엄마랑 같이 힘내서 다녀오자.’라고 이야기를 하고 스케줄을 소화했다. 가끔 무리한 마감시간을 요구하는 작업들도 있었지만, 아기와 나의 컨디션을 조절해가며 일을 하는 것에 조금씩 익숙해지니까 그것도 불가능하지는 않았다.

    처음에는 임신에 대해서도 아는 것이 없고, 아기에 대해서도 아는 것이 없다보니 그저 무섭고, 막막하고, 걱정이 됐었는데, 변화된 몸과 새로 생긴 아기라는 존재에 대해 조금씩 적응하고, 공존할 수 있는 방법을 터득해 나가면서 임신을 해도 할 수 있는 것들이 이렇게나 많이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됐다. 처음에 할 수 없는 것들이 많아졌다는 사실에 집중했을 때는 우울하고, 억울함에 눈물도 많이 나왔다. 하지만 할 수 있는 것들을 생각하고, 그것들에 집중해서 역량을 키울 수 있는 기회로 삼으니 삶이 다시 재미있어 졌다. 그래서 이제는 임산부가 약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이전과 똑같은 나다.

 


(내가 생각하는) 임산부 에티켓

 

▢ 대중교통 이용 시 '임산부 먼저' 뱃지나 가방 고리를 본다면 임산부석은 양보해주세요.

배가 안 나온 임산부일수록 더 힘들어할 수도 있습니다.

▢ 임신과 출산을 과하게 해석하지 말아주세요.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주세요.

임산부는 과잉보호의 대상도, 단체에 방해가 되거나 해를 끼치는 존재도 아닙니다.

▢ 임신으로 인한 신체의 변화에 대해 언급하지 말아주세요.

다른 사람이 굳이 말을 보태지 않아도 자신의 몸이 변하는 것에 충분히 스트레스를 받고 있어요.

▢ 상대방의 요청이 있을 때 도와주세요.

정말로 상대방을 배려하고 도와주고 싶다면,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지 말하라는 한 마디면 충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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